김충규, 유리창과 바람과 사람
유리창에서 바람이 미끄러진다
먼 곳에서 우리 집 쪽으로 하염없이 밀려와
발코니 유리창에서 그만 미끄러진다
저 바람의 숙박은 대체 어디여야 하는가
한때 내가 나를 들판에 버려서
어디 향할지 몰라 허둥거리던 영혼을 보는 듯
기실 저 바람이란 누군가의 영혼이 떠도는 것인지 몰라
유리창에 부딪혀 피 흘리는 바람의 영혼이 측은해
눈길을 피한들 내 영혼의 숙박이 온전한 건 아니다
영혼이 매일 변신을 거듭한다면 모를 일이나
저리 미끄러진 바람은 절룩일망정 변신하진 못할 것이다
바람의 육체가 수시로 변한다고 믿는 건
사람의 어리석음일 뿐
한번 얻은 육체는 바람도 사람도 어쩌지를 못하는 법
하여 서럽기도 하고 생이 두렵기도 하고
유리창에 미끄러지기도 하는 것
저렇게 살다 죽더라도 바람이 묘비명을 남길 일은 없듯
내 가련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이 오더라도
나는 묘비명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
그저 세상이라는 유리벽에 반복적으로 미끄러지다
일생을 훌쩍 허비한 것에 불과할 테지만
앞을 가로막은 유리창을 원망할 필요는 없는 것
바람은 바람 없는 영원의 숙박을
사람은 사람 없는 영원의 숙박을
그나 나나 사후(死後)는 그리 고요하면 그만